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스샹달 전투 (문단 편집) == 기타 == [youtube(mdrB-nLriPc, width=480, height=360)] * [[캐나다]]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766|파스샹달]]은 이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 이 지옥같은 전투를 배경으로 만든 노래가 2곡 있다. 아이언 메이든의 [[https://youtu.be/Mx3UPfzGeN4|Paschendale]]과, [[사바톤]]의 [[https://youtu.be/BEY7Ton1gO4|The Price of Mile]], [[https://youtu.be/5mt4B5Z8uLA|Great War]]. * [[헬레이저 시리즈]]의 메인 빌런인 [[핀헤드]]의 탄생 배경이 된 전투이기도 하다. 원래는 평범한 인간 군인 '엘리엇 스펜서' 대위였던 그는 이 전투에서 전우들을 다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PTSD로 인해 변태적 쾌락에 탐닉하게 되면서 결국 르마르샹의 상자를 손에 넣어 악마적 존재 '수도사'가 되어버린 것. * Ypres(이프르; 프랑스어로 이프르가 위치한 플란데런 지방의 네덜란드어로는 이퍼르(Ieper))란 지명의 발음이 지금의 우리 한국인에게도 생소하고 어색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영국군에게도 Ypres란 낮선 발음은 발음하기 애매했다. 그래서 영국군은 Ypres란 이름 대신에 Wipers(와이퍼즈)라고 발음했고, 전쟁 중에도 와이퍼즈 타임즈란 전시신문을 만들어서 뿌리기도 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The_Wipers_Times|**]] * 파스샹달 전투는 미군이 참전하기 전, 마지막 연합군 대공세이기도 하다. * 파스샹달 전투 당시 무인지대 한복판에 60시간을 버틴 전차가 한 대 있었다.[[http://m.dcinside.com/view.php?id=war&no=23733&page=1&serVal=파스샹달&s_type=all&ser_pos=-29949|***]] * [[https://pgr21.com/pb/pb.php?id=freedom&no=46435|3차 이프르 전투(1)-진창밭]]에 들어가면 제 1차 세계 대전의 주요전투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 전반적으로 서부전선의 특급 에이스라 부를 수 있는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 전투에서 사망했는데, 협상국의 대표적인 전투기 에이스인 조르주 기느메르(54기 격추)가 1917년 9월 11일 파스샹달 상공에서 쿠르트 비스만에 의해 격추되어 전사한다. 동맹국 측에선 "황제의 얼굴"이란 포커 Dr.I의 주인이기도 한 베르너 포스(48기 격추, Werner Voss, 1897 ~ 1917)가 1917년 9월 23일 파스샹달 상공에서 제임스 매커든(James McCudden, 1895 ~ 1918)이 이끄는 7대의 SE5a와 싸우다 전사했다. 그리고 영웅의 사망과 동시에 새로운 영웅들도 등장했는데, 앞서 말한 제임스 매커든(57기 격추)과 더불어 에드워드 메녹(61기 격추, 1887~1918)이란 격추왕이 등장했다. 두 사람다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다. * 전반적으로 서부전선의 연합군은 진창에 잔뜩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 프랑스병사는 자신들이 시달리는 진창에 대해 이런 평을 내렸다. "프랑스 병사들도 진흙을 온갖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 모든 명칭은 결국 하나로 소급되었다. 진흙(melasse), 진창(gadoue), 진흙탕(gadouille), 똥(mouscaille)은 모두 진흙의 다른 이름이다." [[https://i.ytimg.com/vi/-va_dPqkjK8/maxresdefault.jpg]] * [[배틀필드 1]]에서 캉브레 전투에 참가한 MK 지상함 승조원들의 이야기가 싱글플레이로 나온다. 마지막 DLC인 Apocalypse에서의 맵으로 등장했다. * 역사상 단 3명만 있는 [[빅토리아 십자무공훈장]]의 두번째 복수 수훈자가 이 전투에서 나왔다. 이름은 [[https://en.wikipedia.org/wiki/Noel_Godfrey_Chavasse|노엘 고드프리 차바세]]로, 군의관(대위)이었다. 쌍둥이 중 동생으로 태어났고,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400m 달리기 올림픽 예선까지 갔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출중했다. 그리고 [[솜 전투]]에서 이미 첫 번째 빅토리아 훈장을 수훈한 상태였다. 차바세 대위는 파스샹달 첫 번째 국면인 필켐 능선 전투에서 응급 치료소로 병사들을 옮기던 중에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후송을 거부하고 '''이틀 동안이나''' 음식도 먹지 않고 응급 치료소에서 계속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두 번째 빅토리아 훈장 수훈 결정 이후 이틀 뒤에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그는 영국군이 참전한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두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비전투 행위로 수훈받았지만 용맹함은 다른 수훈자들 못지 않았다. * 훗날 헤이그는 파스샹달 전투를 왜 해야 했는지 변명을 지어냈는데, 헤이그는 폭동이 일어난 프랑스군에 쏠리게 될 독일인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페탱이 영국의 공세를 요청했다고 주장했지만, 페탱은 단지 독일인들이 계속 바쁘게 움직일 만한 소규모 공세를 원했지 영국군을 니벨 공세 이후 모랄빵난 프랑스 군으로 만들수 있는 대규모 공세를 원치 않았다. * 최후의 참호전 참전용사인 [[https://en.wikipedia.org/wiki/Harry_Patch|해리 패치]]가 참전했던 전투로 사망 2년 전 본인이 싸웠던 전장에 들러 헌화를 했다. 그는 17년 9월 22일 22시경 파스샹달에서 큰 중상을 입었으며(사타구니에 파편상을 당했는데, 물품 부족으로 마취제 없이 파편을 제거했다...), 자기 눈 앞에서 친한친구 3명이 전사했다고 회고했다. 2004년 선데이 타임즈 인터뷰에선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했던 당시의 영국 정부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남겼다. 불행히도 해리 패치옹의 자식(아들 2명)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0510006|*****]] * 아돌프 히틀러가 파스샹달 전투 당시 루프레히트[*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루프레히트는 반나치 인사로 고초를 겪었다.] 휘하의 제6 바이에른 예비 사단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파스샹달 전투 이후 18년 10월 경 겨자 가스 공격을 받아서 후방으로 후송갔으며, 이것이 히틀러의 마지막 전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